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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열
왼쪽 늪에 빠지다·1
-인간의 오감은 일초 동안에 일만 단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뇌 속에서
처리된 일만단위의 정보 중에서 우리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일곱단위 정도이며
나머지 구천구백구십삼단위는 사라진다 일초단위로 사라지는 엄청난 양의 감성
속에서 다시 자의식을 끄집어 내는 것이 좌뇌의 임무이다
보이지 않는 비의 그림자
들리지 않는 그림자의 속삭임
한 쪽 귀가 구름의 소리를 들을 때
다른 쪽 귀가 듣는 땅의 소리
한 쪽 눈으로 비 맞는 백사장을 볼 때
다른 쪽 눈에 자유롭게 떠 다니는 모래알들
한 손으로 빗물의 차가움을 느낄 때
다른 손에 잡히는 유년의 따뜻함
오른 쪽 눈이 사과를 보고 있을 때
오렌지를 집어드는 왼손의 익숙함
비가 개인 뒤 한 쪽 눈엔 무지개가 뜨고
다른 쪽 눈에서 가라앉는 일상의 고기떼들
비 개인 하늘의 비린내와 함께
입 안에서 고이는 들풀의 단내
일곱가지 무지개 빛과 검정 하양을 합쳐
아홉 가지 빛으로 차린 저녁 식탁
둘러앉은 식구들이 공복과 함께 느끼는
오감을 통해 건져올린 형용사와 부사에
전혀 수식당하지 않는 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힘
느끼는 순간 빠져나가는
왼쪽 늪에 빠지다·4
-뇌의 왼쪽 절반에 살고 있는 좌뇌인간이 문득 같은 뇌 오른쪽에 살고 있는
생면부지의 우뇌인간을 만났다 악수를 하고나서 서로는 생각했다 왜 여태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살아왔을까 어떻게 이 긴 세월 동안 만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고민 끝에 좌뇌인간은 오른쪽 뇌로 우뇌인간은 왼쪽 뇌로
바꾸어 들어가 살기로 했다 이후로 인간의 문명은 이중구조를 띄우며
평화와 폭력이 공존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문화?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문학은 자기 최면에 빠졌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세상 온갖 것들이 너를 붙잡고
안팎으로 변두리로 드나들며 유혹하였고
길들여지고 지배하기 위해
빗소리에 문득 놀라고 바람소리에 문득 몸서리치며
비 개인 숲속에서나 인적 끊긴 골목길에서 눈물 지으며
꽃잎이나 번개 속에서 살림을 차렸지만
키우고 자라는 것은 벌레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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