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국수를 먹는 모임
하늘로부터 지상의 공간을 밀밀하게 채우며 무색 투명의 비가 내린다
그것은 때로 분무기로 뿌린 듯한 비안개일 수도 있고, 소리 없이 옷깃을 적시는 가랑비일 수도 있고,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처럼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끊임없는 물줄기일 수도 있고,
둔중한 쇠줕이를 쏟아붓듯 소란스럽고 격렬한 장대비일 수도 있다
비가 내릴 때는 지상의 온도도 떨어져 등줄기에 한기가 스민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쓸쓸한 이면, 저 음습한 근원적 고독에 뿌리박은
원형질의 슬픔을 갑자기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양평동의 한 지하공간에서 만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누가 연락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모여든다. 모이는 인원은 거의 한정적이었고 누가 붙였는지
어느 사이 이름도 지어졌다. 비 오는 날 국수를 먹는 모임..
아마 작업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가스 레인지 앞에서 추운 등을 웅크리고 국수를 삶다 말고,
아니면 그렇게 삶아낸 국수발을 생의 가닥 훑듯이 후루룩 들이켜다 말고 문득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밖에는 언제나 가늘거나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그렇게 내리는 비로 인해 몸 안으로 달라붙는 그 이상한 한기를 떨쳐내려고 뜨거운 국수를 삶아 먹거나,
아니면 그런 식으로 으스스한 배를 채우고 상대방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밖에는
대체로 달리 하는 일이 없었다.
비 오는날 국수를 먹는 모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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